은교를 보았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박범신 작가의 욕망 3부작 중 하나라는 것과 박해일이 8시간씩 노인 분장을 했다는 것.
달랑 두가지 뿐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어땠냐면..
검색이 되는 블로그니까 스포주의라고 일단 날려줘야하나.
10대의 싱그러운 젊음과 꾸밈없는 순수함에 늙음이라는 축 처진 껍데기가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반짝이는 내면은 처진 몸뚱아리마저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는걸
감독과 배우 모두 잘 표현해준 것 같다.
첫 장면에 나오는 검버섯이 핀 피부, 축 늘어진 살들.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밥에.. 반찬 하나 덩그러니 놓고 아무 생각없이 우물대는 모습에 늙음이 주는 서러움이 엄청 와닿았다.
만약 은교가 저런 행동을 했다면 그렇게 초라해보이진 않았겠지
그래서 그 다음에 이어진 은교의 하얗고 반짝이는 피부, 생기넘치는 발걸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씩씩함이 앞 장면의 초라함과 대비되어 그녀를 더 싱그럽게 만들지 않았나 한다.
감독은 시종일관 이런 대비가 주는 효과를 적절히 사용하는데 그게 순간순간 감정을 극대화시키는데 아주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적요)이 은교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부러움, 눈이 부셔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는 그런 것이었다면 제자가 보여주는 반응은 자기는 그 오랜 시간동안 시인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 소녀가 단박에 해내는 것에 대한 질투로 보였다. 초반의 둘은 마치 초딩처럼 싸우지 않았던가. 사실 웃기도 많이 웃었다.
하지만 시인이 대필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훔쳐낸 단편이 이상문학상을 타면서 그는 시인에 대한 존경과 시기심으로 혼란스러워한다. 그 애증을 표현하는 김무열의 연기는.... 약간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 못했다는건 아니고 그 한순간에도 수백번 변화하는 그 마음을 잘 느낄 수 없었다고 해야하나. 다른 부분은 몰라도 소설 은교를 읽고 난 뒤의 반응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와 스승사이의 알 수 없는 유대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 자신은 죽어도 쓰지 못하는 아름다운 글에 대한 질투, 기왕지사 대필작가가 되어줄거면 이런 소설을 써주지 왜 장르소설 따위를 써줬냐는 원망 등 시인에게 가졌던 온갖 모순된 감정이 한꺼번에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서 처절한 절망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인데 .. 난 썩 그리 와닿진 않았다.
위에서 제자가 은교를 좋아한다고 썼지만 난 사실 진짜 좋아했나.. 싶기도 하다.
그냥 스승이 좋아하는 여자인데 늙음이라는 굴레로 손대지 못하고 상상만 하니까 그것을 비웃으며 그랬나 싶기도 하고.
내 안에서 제자는 소설이든 영화든 세 인물 중 가장 많은 마음이 가는 캐릭터인만큼 자꾸자꾸 눈이 엄격해지는 것 같애 ㅋㅋㅋ
이런 감정적인 모순이 가득한 캐릭터들은 인간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자꾸 애정이 생긴단 말이지.
여튼. 은교. 재밌었습니다.
이 영화를 전혀 보지 못한 남자친구는 첫 데뷔작이 노출이 너무 심해서 여배우의 앞길에 굴레가 씌워질 것을 걱정하던데.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었고 탕웨이도 있으니깐. 괜찮지 않을까나.
'hina’s libr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은교를 보다. (0) | 2012/05/08 |
|---|---|
|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0) | 2012/04/12 |
| 괴도 뤼팽vs에를록 숄메즈 (0) | 2012/03/07 |
|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 /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0) | 2012/01/13 |
| 로마 모자 미스터리 (0) | 2012/01/10 |
| 뮤지컬 조로 관람 후기 (1) | 2011/12/01 |